대화
웅이네 분식
뉴클리어
2009. 12. 18. 10:50
"생사의 길에 섰을 때 누군가 전했던 10만원이 제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198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 달동네, 기와지붕에서 비가 새는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김수자(56.여) 씨는 못된 결심을 했다.
쌀 한 주먹과 라면 한 개를 넣어 끓인 죽으로 네 식구가 하루를 버티는데 지붕 위에서 고양이의 사체를 파먹던 구더기가 밥상 위로 떨어졌다.
방 여기저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들만 눕혀놓고 남편 이상근(58) 씨와 둘이 쪼그려앉아 밤을 새는 날이 계속됐다.
결국 남편이 일거리를 구하러 나간 사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웠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데 당시 1살과 3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배가 고파 시끄럽게 울어대자 이웃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김 씨를 살렸다.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 창문에는 10만원이 든 흰 봉투가 끼어져 있었다.
"그때 그 돈으로 쌀과 연탄을 사면서 살 용기와 희망을 가졌어요.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이후로 생선장사, 신발가게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1995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광주본부 설립 이후 세 번째 기증자로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30대 여성환자에 대한 신장이식을 하면서 10여년 전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영구임대주택 대출금을 갚고 기부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형편 나아지고 하려면 평생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스타트를 끊었다.
현재 광주시 동구 화정동 아파트 상가에서 '웅이네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 씨는 지난 15년동안 월수입 150만원의 절반인 50만-70만원을 매달 기부하고 있다.
어린이재단 30만원, 기타 복지단체 22만원 등 52만원의 기부금을 매달 통장에서 자동이체해놓고 남편이 가위를 갈아주고 벌어온 돈으로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 직접 전해준다.
기부금과 아파트 대출할부금 30만원을 제외하면 50만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네 식구가 살아간다.
"기부금 70만원으로 적금을 부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럴 때마다 매일 욕심을 버려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삶이잖아요."
10여년을 9평짜리 임대주택에 살다 5년 전에야 5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23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가게에 나가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한 덕분이었다.
부부는 해외여행은 커녕 제주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몸에 맞지 않는 헌 교복과 신발을 구해 입히면서 키웠다.
"30년 동안 퍼머를 못 해봤고 노래방과 찜질방도 안 가봤어요. 퍼머 2만원 주고 한다고 생각하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그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하니 쓸 수가 없어요. 하루 세끼 먹는 거 외에 우리 가족은 허튼 돈을 쓰지 않습니다."
15년간 아무도 모르게 기부를 해오다 올해 처음 지역언론을 통해 부부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지난 11일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나누는 사람들' 130여명과 함께 대통령 부부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기부하느라 저축 한 번 못했지만, 혹시라도 죽을 때 재산이 남으면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합의를 했다.
헌 교복을 입고 자란 딸은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란다.
간혹 남들은 김 씨 부부(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의 삶을 보고 궁상떤다고 하지만 김 씨는 스스로를 '사회의 강한 사람'이자 '남들보다 잘사는 삶'이라고 잘라 말한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더불어서 살아야 해요.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잘사는 방법을 더 빨리 터득했던 것뿐이에요."
(연합뉴스)
198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 달동네, 기와지붕에서 비가 새는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김수자(56.여) 씨는 못된 결심을 했다.
쌀 한 주먹과 라면 한 개를 넣어 끓인 죽으로 네 식구가 하루를 버티는데 지붕 위에서 고양이의 사체를 파먹던 구더기가 밥상 위로 떨어졌다.
방 여기저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들만 눕혀놓고 남편 이상근(58) 씨와 둘이 쪼그려앉아 밤을 새는 날이 계속됐다.
결국 남편이 일거리를 구하러 나간 사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웠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데 당시 1살과 3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배가 고파 시끄럽게 울어대자 이웃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김 씨를 살렸다.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 창문에는 10만원이 든 흰 봉투가 끼어져 있었다.
"그때 그 돈으로 쌀과 연탄을 사면서 살 용기와 희망을 가졌어요.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이후로 생선장사, 신발가게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1995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광주본부 설립 이후 세 번째 기증자로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30대 여성환자에 대한 신장이식을 하면서 10여년 전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영구임대주택 대출금을 갚고 기부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형편 나아지고 하려면 평생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스타트를 끊었다.
현재 광주시 동구 화정동 아파트 상가에서 '웅이네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 씨는 지난 15년동안 월수입 150만원의 절반인 50만-70만원을 매달 기부하고 있다.
어린이재단 30만원, 기타 복지단체 22만원 등 52만원의 기부금을 매달 통장에서 자동이체해놓고 남편이 가위를 갈아주고 벌어온 돈으로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 직접 전해준다.
기부금과 아파트 대출할부금 30만원을 제외하면 50만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네 식구가 살아간다.
"기부금 70만원으로 적금을 부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럴 때마다 매일 욕심을 버려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삶이잖아요."
10여년을 9평짜리 임대주택에 살다 5년 전에야 5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23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가게에 나가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한 덕분이었다.
부부는 해외여행은 커녕 제주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몸에 맞지 않는 헌 교복과 신발을 구해 입히면서 키웠다.
"30년 동안 퍼머를 못 해봤고 노래방과 찜질방도 안 가봤어요. 퍼머 2만원 주고 한다고 생각하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그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하니 쓸 수가 없어요. 하루 세끼 먹는 거 외에 우리 가족은 허튼 돈을 쓰지 않습니다."
15년간 아무도 모르게 기부를 해오다 올해 처음 지역언론을 통해 부부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지난 11일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나누는 사람들' 130여명과 함께 대통령 부부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기부하느라 저축 한 번 못했지만, 혹시라도 죽을 때 재산이 남으면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합의를 했다.
헌 교복을 입고 자란 딸은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란다.
간혹 남들은 김 씨 부부(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의 삶을 보고 궁상떤다고 하지만 김 씨는 스스로를 '사회의 강한 사람'이자 '남들보다 잘사는 삶'이라고 잘라 말한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더불어서 살아야 해요.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잘사는 방법을 더 빨리 터득했던 것뿐이에요."
(연합뉴스)